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삶의 뜨락에서] 엄청 훌륭한 일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4년, 4년, 도합 8년, 2번의 임기를 마치고, 자발적으로 물러났다. 그 당시 조지 워싱턴은 국민으로부터 인기가 좋았다. 워싱턴은 3선, 4선도 무난하게 당선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워싱턴이 계속 대통령을 하다가 독재자가될까 봐 두렵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워싱턴은 두 임기(8년)를 마치고, 자발적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물러남이 엄청나게 훌륭한 일이었다. 이게 전통이 되어서 미국의 대통령은 두 임기뿐이다.     엄청 훌륭한 일이 또 생겼다. 베네딕토 16세는, 77세, 2005년 4월에 교황으로 즉위하였다. 8년 후, 85세, 2013년 2월에 교황직에서 스스로 사임했다. “고령인 데다가…, 너무나 빠른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고…, 최근 몇 달 동안 심신이 쇠약해지면서 제게 맡겨진 이 사도직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황직에서 사임했던 것이다.     어느 누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싶어 하겠는가.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온갖 악랄한 짓을 하는 이 세상에! 정적들을 죽이고, 그리고 국민을 탄압하면서, 독재하려고 하는 판국에. 그렇구나, 권좌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일! 그래 맞아, 권좌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이 어려운 일! 이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게 ‘엄청 훌륭한 일’이라는 것은 나는 깨달았다.     교황은 물러난 후, 9년 동안 바티칸 내 에클레시아 수도원에서, 매일 기도와 책을 쓰면서 조용하게 살았다. 죽기 몇 시간 전에, “주님이시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간호사가 전했다.     베데딕트 16세 교황이 8년 정치하고 물러났기에, 다음 교황들도, 이분의 본을 따라, 교황들이 10년 정도 정치를 하고서 스스로 물러나 주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 대부분의 고통과 가난과 부패는 독재자의 횡포에서 생긴 것이다. 독재자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고 입으로는 마구 떠들어대고 있지만, 실은 자기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심지어 어떤 독재자들은, 남의 나라까지 먹고 싶은 탐욕에, 옆 나라를 침공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   만약 독재자들이, 워싱턴 대통령처럼 그리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처럼, 몇 년간 정치하고 자발적으로 물러난다면? 그 나라는 보다 더 부유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을 보라. 지금 수많은 세계의 굶주린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살고자 한다. 왜 미국에 와서 살고자 하는가? 미국은 부자이고 그리고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왜 그런가? 수많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에는 독재자가 없다. 독재자가 없는 대신에, 그 자리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독재자가 없기에 부패가 없다. 그래서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되었고 계속 최강의 나라가 되어 갈 것이다.     베네딕토 16세의 은퇴를 보고서, 고려말 나옹선사(1320~1376)의 시가 생각이 나서 여기에 적어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노여움도 내려놓고 아쉬움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워싱턴 대통령 초대 대통령 대통령 자리

2025-06-03

[삶의 뜨락에서] 태국 - 미소의 나라

이번 크루즈 여행 중 베트남 다음으로 방문한 나라는 태국이다. 내가 그들에게 받은 인상은 그들은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예의 바르다고 느꼈다. 그들은 느긋하고 여유로우며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인사한다. 또한 그들은 가족 간의 유대 관계를 매우 중요시한다.     이 나라는 입헌 군주제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고수하고 태국 헌법상 국교는 없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태국문화에서 불교는 압도적으로 전체 인구의 95%가 불교 신자이다. 법으로 강요하지는 않지만, 태국에서 성인 남자가 일생에 한 번 전통적으로 삭발하고 떠나는 단기 출가는 성인식 대신이 되기도 한다. 기후는 열대 몬순기후라서 우기(5월에서 10월) 때마다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산이 없이 지형이 평평해 홍수 피해가 많은 편이다. 홍수 문제는 교통 혼잡을 불러와 국가의 큰 과제라 한다.     태국민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 통치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였다는 큰 자존심이 있다. 이 나라는 적도에 인접해 있어 일 년 내 여름이지만 북부지방에서는 최저기온이 12월과 1월 사이 밤에는 59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외국인들은 이 나라에는 오직 세 개의 여름, 즉 여름, 더운 여름, 아주 더운 여름만 있다고 표현한다. 또한 습도가 85%에 달해 체감온도는 훨씬 높아 숨이 탁 막힐 정도로 무덥고 습해 중동이나 아프리카 사막지대보다 훨씬 덥게 느낀다. 작열하는 태양과 푹푹 찌는 날씨가 태국의 여름 방문을 피하게 한다. 보통 12월 전후로 해안가 휴양지는 지중해성 기후와 비슷해 여행하기에 최적의 시기이다. 태국은 수도권인 방콕과 휴양도시인 파타야가 관광지로 유명하다.     방콕은 현대식 건물로 가득 차 있으며 명품쇼핑을 즐기는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반면, 이 나라를 대표하는 왕궁과 유적지들이 많이 있다. 이 나라 여행의 제1순위인 왕궁(프라 보롬 마하랏차왕 - Grand Palace)은 과거 국왕들이 거주했던, 라마 1세에 의해 1782년에 건립된 왕실 궁전으로 방콕의 심장부이다. 여러 사원과 황금 탑, 불상, 벽화 등 다양한 색채의 향연은 적도의 태양 아래 눈부셨다. 과거에는 국왕들이 거주했으나 지금은 태국의 제1순위 관광지이다. 건축물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작품으로 혼이 들어간 장인 정신에 압도되어 94도의 불볕더위에 비처럼 흐르는 땀을 닦기도 미안했다. 이 왕궁 방문 하나만으로도 태국의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예술과 건축물을 한꺼번에 본 셈이다.     태국은 그들만의 종교색이 짙은 풍부한 문화와 숨을 멎게 하는 자연경관, 특색있는 음식과 생동감 있는 야경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이번에 방문한 코사무이 섬은 수면이 얕아 크루즈 배를 댈 수 없어 바다 한가운데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들어갔다. 아직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아 천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그 섬은 그림엽서 같은 해변이 섬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90%의 관광객이 이스라엘과 유럽인이라고 한다. 태국 음식은 많은 애호가를 갖고 있다. 난 그들의 특이한 향에 민감해서 별로 즐기지 못했지만, 동행한 사람들은 팟타이(새콤, 달콤, 짭짤한 맛이 어우러진 태국식 볶음 쌀국수), 파파야 무침(파파야, 마른 새우, 고추, 땅콩 가루를 빻아 만든 샐러드)을 얼마나 잘 먹는지 부러웠다.     태국은 또한 동물들이 많아 코끼리, 원숭이, 악어 쇼가 유명하다. 태국의 상징인 코끼리는, 특히 흰 코끼리는 이 나라에서 아주 귀하게 대접받는다. 마야 부인이 석가모니를 낳기 전 태몽으로 여섯 개의 상아가 달린 흰 코끼리 꿈을 꾸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코끼리에도 등급이 있어 우직한 애들은 밀림에서 통나무를 나르는 일을 하고 영리한 애들은 훈련을 거친 후 쇼에 나와 재롱을 부리기도 한다. 악어 쇼에서는 그들이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입을 한번 벌리면 수련사의 머리나 팔뚝이 들어와도 계속 입을 벌린 채로 졸고 있었다. 명연기였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태국 미소 태국 헌법상 나라 여행 여름 방문

2025-06-02

[삶의 뜨락에서] 예배도 여러 형태

여름에 이탈리아 플로렌스에 여행을 갔었을 때다. 햇빛이 강했다. 모자를 쓰고서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커다란 성당이 보였다. 여럿이서 줄을 서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입구에서 지키고 있던 문지기가 내 바로 앞에 팔을 쭉 뻗더니만 나를 막았다. 왜 못 들어가게 할까 하고 문지기를 쳐다보았다. 모자를 벗으라고 했다. 어찌 감히 신 앞에 모자를 쓰고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조로, 나무라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모자를 벗었다. 안에 들어갔다. 경건하게 예수상을향해서 묵례하고 난 후, 성당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성당은 엄청나게 컸다. 천정도 엄청나게 높았다. 중세기 때부터 지어졌다고 했다. 성당을 크게 진 이유는, 어떤 책에 보니까, 성당은 신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커다란 성당 안에 들어가서, 성당의 크기, 다시 말하면 신의 엄청난 큼에 우리 인간은 너무나도 작게 느껴진다. 위압감을 당한다. 저절로 신을 우러러보고 감탄하고 탄복하고 만다.   몇 년 전에 모스크바에 있는 어느 유대교의 교회당(Synagogue)에 들어갔었을 때다. 교회당 정문 앞에서 모자를 벗었다. 모자를 손에 들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문 앞에서 안내하는 라바이(Rabbi)가, 나를 막더니만, 모자를 쓰고 들어오라고 한다. 왜 모자를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유대인들은 머리에 작고 둥근 모자(키파)를 쓰고 다닌다. 키파는 신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신은 항상 인간 위에 존재하고 계시기에 모자를 쓰고 다님으로써 신을 숭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God을 믿고 있고 유대교는여호와(Yahweh)를 믿고 있는데 이름만 다르다는 것뿐이지 실은 같은 신이다. 문제점은 같은 신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왜 상반된 다른 교리를 갖고 있느냐? 이다. 장로교 교회에서는 신도들이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본다. 기도할 때도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기도한다. 특히 가톨릭 성당에서는, 어떤 때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링컨 대통령은 다르다. 다른 신도들은 다들 앉아서 기도하는데, 링컨 혼자서만 선 채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것을 어느 신문에서 본 적이 있었다. 선 채로 기도한 이유는,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당시, 군인 막사에 방문할 때마다 별자리 장성들이 링컨 대통령을 보기만 하면 다들 일어서서 경의를 표했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링컨은 서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러시아, 루마니아 그리고 그리스의 동방정교회에 가보면 교회 안에 의자가 없다. 예배를 볼 때 서서 본다. 왜냐고? 신 앞에서, 건방지게, 어찌 감히 인간들이 앉아서 예배를 볼 수 있느냐이다. 여행 안내자는, 보통 주말에는 한 시간 정도 예배를 보니까 문제가 없다. 그런데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는 4~5시간 내내 서서 예배를 본다고 했다. 4~5시간 서서 예배를 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루마니아에서 온 어떤 여인은, 루마니아에서는 서서 예배를 보지만, 미국에 있는 루마니아 교회에서는 앉아서 예배를 본다고 했다. 만약 미국에서, 앉지 않고, 서서 예배를 보게 된다면 루마니아 신도들이 교회에 오지 않아버린다고 했다. 기도해도 편하게 하자는 게 미국인 사고방식인가 보다. 서서 기도를 하든, 앉아서 기도하든, 요점은 경건한 마음이다. 조성내 / 수필가·의사삶의 뜨락에서 예배 형태 루마니아 교회 정도 예배 루마니아 신도들

2025-05-20

[삶의 뜨락에서] 베트남은 용틀임 중

이번 여행 중 인도네시아에서는 5일을 보냈지만, 베트남에서는 단 하루밖에 보내지 못했다. 크루즈 여행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코스가 정해져 있어서 거기에 따라야 하는 단점이 있다. 운 좋게도 관광학을 전공하는 젊은 여대생 가이드가 우리 부부만을 맡아서 호찌민시로 곧장 데려갔다. 거의 두 시간에 걸쳐 호찌민 시내에 진입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비친 풍경은 마치 한국의 1970년대를 연상시켰다. 베트남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랫동안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고 또 그들을 용감하게 물리치고 굴하지 않은 국민성에 큰 자부심을 품고 있다. 나라 지형이 좁고 길게 반도를 따라 형성되어 있어 지역마다 색다른 문화와 특색을 갖고 있다. 우선 북부 지역에서는 호찌민 주석을 비롯하여 베트남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남부 지방은 풍부한 농산물과 천연자원이 많아 낙천적이고 개방적이며 성격이 자유분방하다고 한다. 호찌민 시는 남부에 있는 베트남 경제의 중심지이고 최대의 도시이다. 사이공으로 잘 알려져 있고 1975년에 패망한 베트남 공화국의 수도였다. 한국 교민이 가장 많이 살고 있어 한인타운이 형성되었다. 이 시는 베트남 전체 인구의 10%가 사는 만큼 항상 분주하고 젊고 역동적이다. 이 시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오토바이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베트남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호찌민시는 베트남의 경제를 주도하는 상업 도시로 한국의 1980~1990년대를 능가하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19세기 말부터 거의 80년 동안 프랑스 지배를 받으며 세워진 유럽풍의 콜로니얼 건축물이 가득해 호찌민을 ‘동양의 파리, 사이공’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프랑스식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노트르담 대성당, 중앙 우체국, 인민 위원회 정부 청사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아픈 역사를 그들의 문화로 잘 승화시킨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그대로 본떠 지은 이 성당은 지금 대 보수 중이어서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으나 그 당시 물자를 운송하고 유럽과의 통신을 위해 지은 중앙 우체국은 과히 국보급이다. 지금도 한 부분은 우체국의 기능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국가 직영의 기념품 상점들이 즐비해 있다. 그들은 또 잊지 않고 유럽의 정통 문화인 대규모의 광장을 지어 아주 복잡한 시내 한가운데서도 숨을 돌리기 위한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다음으로 방문한 쿠치 터널은 베트콩들이 전쟁 당시 숨어지내며 물자와 무기, 음식을 저장하는 터전이었고 지금도 건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 전쟁이 남긴 자취의 박물관을 방문했다. 나는 많은 나라를 방문하면서 꼭 역사박물관에 들른다. 오늘의 그 나라들이 존재하기까지 그들의 선조들이 겪어낸 노력과 희생을 배우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호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이 거대한 박물관은 보는 이에 따라 몇 시간에서 하루 종일도 부족할 정도로 자료가 방대하고 엄청났다. 베트남 전쟁 당시 또 그 결과가 빚은 참혹한 참상을 실물과 영상을 이용하여 솔직하고 거침없이 적나라하게 전시해 놓았다. 특히 이 전쟁 당시 미국이 밀림에 뿌린 제초제는 대외적으로는 말라리아 추방이 목적이었으나 사실은 밀림의 나무들을 고사시킴으로써 숲속에 은신 혹은 매복하던 베트콩의 노출과 식량 보급을 차단하려는 저의가 있었다. 그 제초제의 부작용으로 400만 명 이상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진과 영상이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떤 전쟁도 겪어보지 못한 나 자신도 역사 시간에는 하나의 사건으로만 기억하게 된다. 이번, 이 박물관 방문은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나의 피부 속으로 고스란히 전해왔다. 옆에 서서 함께 영상을 보던 한 미국의 대학생 또한 연민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다. 과연 그는 역사 시간에 미국이 패망한 이 전쟁을 어떻게 배웠을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베트남 용틀임 베트남 독립운동가들 베트남 경제 베트남 공화국

2025-05-19

[삶의 뜨락에서] 행복과 불행

이름은 마리아. 맨해튼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다며 바지와 재킷 수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큰 눈이 인상적이었다. 주문을 받고 자기소개를 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을 끄집어냈다. 며칠 전 아니면 몇 달 전에 이런 일이 있었나 하고 측은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25년 전 이야기라고 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제일 같이 느껴질 정도로 심각했다. 다른 손님이 들어오니까 다음 주에 찾으러 오겠다고 나갔다.     그녀는 간호사로 남편은 투자은행에서 일했고 맨해튼 고급 빌라에서 살았는데 남편이 과로로 쓰러졌다. 치료를 받고 건강한 상태로 일했는데 일이 과중해 주말도 평일에도 늦게까지 일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고 남편도 일을 즐기며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심장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뒤로 일을 줄이고 휴식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산소통을 끼고 살았는데 마리아도 간호사를 그만두고 남편 간호에 모든 정성을 다했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깐 나간 사이에 남편이 침대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고 했다. 그 뒤로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며 심한 우울증으로 의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마리아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스트레스 상황을 겪고 난 후 내가 조금 더 잘했더라면 그때 더 나은 선택을 했더라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하고 자신에게서 불행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내가 잘못하거나 문제가 있어서 생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답이 없는 질문을 반복하며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 자책감과 죄책감에 빠졌다. 우울증이 우리 뇌에 부정적인 것만 유난히 잘 보이도록 만들어졌는가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평생 연구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에 의하면 행복한 사람은 행복의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고 불행의 이유는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시험 성적이 좋게 나왔을 때 행복한 사람은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불행한 사람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적 향상을 위해서 일정 부분 자기반성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반성을 넘어선 자책을 하므로 우울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인생에서 겪는 대부분의 일은 나로 인해 생기기보다 외부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마리아처럼 불행에 대해 자신 내부에서 문제를 찾으려는 일은 지진 피해를 보고 나를 탓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외부에서 문제를 찾는 것을 태생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어디에 두고 바라볼지는 내 결정에 달렸다. 물론 남 탓을 많이 하자는 말은 아니다. 지나친 남 탓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행복한 일만큼 불행한 일이 넘치며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을지 밖에서 찾을지는 내 선택에 달렸다는 뜻이다. 행복한 일은 나에게서 불행한 일은 외부에서 찾는 습관이 행복한 삶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법륜 스님의 책 ‘지금 이대로 좋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행복해지는 데는 이렇게 긴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만족하면 바로 행복해질 수 있어요. 스님의 말처럼 이 순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지금 바로 행복의 계단을 올라타고 올라갈 수도 불행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갈 수도 있다. 마리아가 올 때마다 항상 똑같은 말을 하는, 우리 남편 죽었다고 했던 가로 큰 눈을 깜박이는 모습이 싫어 오렌지를 내밀면서 맛있다고 내가 그녀의 말을 막아 버렸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행복 불행 남편 간호 우리 남편 휴식 시간

2025-05-12

[삶의 뜨락에서] 인도네시아 - 종교가 생활인 나라

지난 3월에 동남아 크루즈를 다녀왔다. 비행기로 뉴욕에서 타이페이로, 타이페이에서 인도네시아 발리에 거의 하루 만에 도착했다. 계절이 겨울에서 여름으로 하루 사이 바뀐 셈이다. 88도의 바닷바람이 끈끈하게 몸에 엉긴다. 가로수의 야자수 나무가 ‘Welcome to Bali’ 두 손 벌려 환영한다. 세계적인 휴양도시인 발리의 제일 큰 자랑은 하늘에서 춤추는 구름과 시시각각 변하는 바닷물 색의 오묘하고도 신비로운 조화였다. 건축물과 관광산업을 위한 모든 시설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결코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자연경관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그대로 멋진 한장의 그림엽서가 된다.     인도네시아는 국토 한가운데로 적도가 통과하여 많은 지역이 열대 정글로 이루어져 있고 많은 섬에는 사화산, 활화산, 휴화산들이 있다. 일 년 내내 고온다습한 우기와 고온 건조한 건기가 있다. 이슬람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2억이 넘는 88%가 이슬람교를 믿지만 발리는 87%가 힌두교 신자이다. 다만 발리 힌두교는 발리 토착 신앙과 인도 불교 및 힌두교의 융합으로 인도와 다르게 ‘성스러운 물의 종교’라 불리며 현세적인 정령신앙에 가깝다. 그들에게 종교는 일상생활에 젖어있어 각 개인의 집에, 공공장소에 또 마을에 성전을 모시는데 식사 전에 마른 바나나 잎으로 만든 접시에 꽃, 밥, 음식 등을 담아 조상신께 정성껏 공양하는 ‘카낭 사리’로 가는 곳마다 공양 접시가 눈에 띄었다. 덥고 습한 날씨여서 위생과 질병이 염려되었으나 그들은 진지하고 마냥 행복해 보였다.     발리는 현재 인도네시아에 속한다. 네덜란드 식민지로 300여 년을 보내고 일본의 짧은 지배 기간을 거쳤으나 서구식 건물이나 철도 하나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 섬에서 생산되는 천연자원을 유럽으로 실어 나르는 관광지로만 알려졌기에 더 이상의 발전을 보지 못했다. 아직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자연 그대로인 순수하고 아름다운 경관은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는다. 타나롯 사원은 발리의 명소다. 주위에 바위가 많아 옥색 바다와 더불어 숨이 막히는 경관을 자아낸다. Rice Field와 Coffee Plantation도 그들만의 자랑이며 아주 인상적이었다. 어떤 사원을 방문했는데 힌두교 사원, 교회, 성당, 절과 모스크가 함께 있어 신기했는데 가이드가 발리에서는 모든 종교를 서로 존중하고 하모니를 이루며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설명하자 가슴이 뭉클했다.     발리에서 3일을 바쁘게 보낸 후 크루즈에 승선했다. 하룻밤을 항해 후 첫 도착지가 Lombok이다. 발리와 다르게 여기는 거주민의 90%가 이슬람교 신자다. 이곳은 대중교통편이 없어 오토바이가 제1의 교통수단이다. 남자들은 밭에 나가 벼농사를 짓고, 히잡을 쓴 여성들이 매일 아이들을 등하교시키고 일상생활을 한다. 아낙들은 Batik이라는 수공예품을 직조해 일상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만든다. 다음에 들린 곳은 Sesak Ende 이라는 마을이다. 차에서 내리자, 소똥 냄새가 진동했다.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할머니 한 분이 조그만 방갈로 같은 초가집 앞 마루에 앉아 계셨다. 소똥으로 코팅한 마루 뒤에 4x4 크기의 방안의 선반에 담요 한장과 바구니 하나가 전부였다. 부엌은 마을 공동으로 마을 중심부에 있었는데 역시 솥 하나와 몇 개의 기구들이 전부였다. 가이드는 3월 한 달이 라마단(일출에서 일몰까지 금식하는 종교의식)이어서 부엌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이 할머니는 우리에게 당신의 집안을 보여주는 호의를 베풀었지만, 이분은 하루를 어떻게 소일하실까 궁금해졌다.     여기 주민들은 모두 무소유주의자이며 금욕주의자들인가. 마을 회당에 들어가니 사내아이 넷이 평상에서 카드 게임을 하고 한 9살 정도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장면 또한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이 애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을까.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을까. 그들은 현실과 인터넷 세상을 어떻게 조율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인도네시아 종교 인도네시아 발리 현재 인도네시아 발리 힌두교

2025-05-05

[삶의 뜨락에서] 시간의 혼

내년 5월이면 대학 졸업 50주년 재상봉이라고 동창회에서 끊임없이 연락이 온다. 벌써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니 믿기 어렵지만 옛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레고 흥분된다. 20대 초반 우리 모두 풋풋한 꿈을 키우며 가슴 터질듯한 젊음을 함께 공유했던 친구들, 50년이란 세월을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궁금해진다. 특히 나처럼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온 경우 친구들과 소식이 끊어진 상태여서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여대생의 앳된 모습만 떠오르고 마법처럼 할머니로 변해 있을 친구들의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이번 재상봉은 그런 의미에서 ‘50년의 공백’을 서로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서로의 거리를 좁혀가는 자리가 되리라 믿는다. 문제는 점점 시간이 가깝게 다가오니 마음 한쪽에 갈등이 생긴다. 유난히 얼굴에 주름이 많은 나는 신경이 쓰이고 친구들을 만날 자신이 없어진다. 한국은 성형 천국의 나라라고 한다. 보통 부모님의 효도 선물로 성형수술이 제1순위라고 들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마짜리로 치장했는지 그 값어치만큼의 대우를 해준다고 한다. 대화 내용은 물질 지상주의이고 피상적이어서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외계인 취급을 받는다고 내 주위의 친구들이 귀띔해 준다.     50년이란 시간은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보낸 지난 50년은 강산이 5번 변한 것이 아니라 50번은 변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스마트폰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시간의 개념은 과연 무엇인가. 시간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오직 느끼고 알아차릴 뿐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아예 시간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차차 사람들은 낮과 밤이 반복되고 계절이 순환하며 해가 되풀이됨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사람들은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시간을 초, 분, 시, 일, 주, 월, 년으로 정하기로 했다. 시간은 우주가 생성되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영원히 죽지 않는다. 시간의 본질은 전진할 뿐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진리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루 24시간은 길게 느껴지지만, 일주일 한 달은 빨리 지나간다. 행복한 순간은 빨리 지나가고 고통의 시간은 더디게 간다. 이는 시간을 주관적 관점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나이를 잊고 살지만 우리 손자들이 무럭무럭 커가는 것을 볼 때 문득 자신의 나이를 깨닫게 된다. 시간은 아이를 어른이 되게 하고, 꽃이 피고 지게 하고, 포도를 발효시켜 멋진 포도주를 만들기도 한다. 또 시간은 바위를 부숴 모래를 만들기도 하고 바다를 사막이 되게도 하며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일정한 속도로 나아간다.     “나의 육체적 삶은 시간이 준 놀라운 선물이다. 시간은 그 선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그 선물을 회수해 간다.” 『Unlocking the secrets of time』 by Christopher Dewdney, 이 얼마나 시간에 대한 적절한 묘사인가. 우리는 육신을 갖고 시간 속을 지나고 있는 시간 여행자들이다. 시간은 사물을 부패시키고 생명체를 변형시킨다. 시간은 먼지를 모으고 거미줄을 친다. 시간은 얼굴에 주름을 만들기도 하지만 중후한 멋과 품위를 선물하기도 한다. 그동안 시간은 2차원의 세계에서 직진만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이 글을 써 내려 가면서 시간에도 깊이가 있고 혼이 있다는 깨달음이 온다. 시간의 주인이 시간을 사방이 다 열린 공간에 내놓고 3차원의 세계로 창조할 수도 있다. 시간이 뿜어내는 내면의 빛을 통과한 수많은 파문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갑자기 내 귀에 들려온다. 그들의 대화는 시간의 바람을 타고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하고 나는 어느덧 그 선율에 맞춰 유영하며 하늘을 무대로 춤추고 있다.     시간은 물의 속성을 닮아 유동성이 있다. 물이 담기는 용기에 따라 모습이 바뀌듯 시간도 쓰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빚는다. 왜냐하면 시간의 혼은 오직 그 시간의 주인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빛나는 시간을 위해 우리 모두 축배 하자.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시간 하루 24시간 그동안 시간 보통 나이

2025-04-21

[삶의 뜨락에서] 해를 따라가다

내가 좋아하는 길 이름은 ‘Going To The Sun Road’.  몬태나 국립빙하공원으로 가는 산길이다. 구불구불한 절벽을 타고 가면 Logan Pass, 정상에 도달한다. 여기는 Continental Divide, 로키 산맥을 따라 미대륙이 나뉘는 지점이다. 대륙 분기점 동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돌고 돌아 대서양으로, 서쪽으로 떨어지면 캘리포니아로 흘러 태평양으로 합류한다. 수백 년 전 Yellow Stone, 몬태나, 콜로라도 일대에 살던 인디언들은 해를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해는 빛과 어둠, 혹독한 추위와 따뜻함, 곡식을 재배하는 원천, 생존의 근원이 된다. 당연히 해를 따라 이동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이런 길 이름이 생겼을 것이다. 인디언들은 미국의 서부 개척사가 시작되면서 백인 탐험가들에 쫓겨 학살당했다. 산간도로 중간 지점에 큰 바위에서 눈 녹은 물이 떨어진다. 사람들은 이를 인디언들의 흐느낌으로 생각해 ‘The Weeping Rock’이라고 부르고 있다.     해는 우주의 중심이다. 천체 만물은 해를 따라 움직인다. GOD은 유일신(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 소문자 god은 잡신을 의미한다. 태양신, 해신, 목신 등을 숭상하고 절하는 것은 모두 잡신을 섬기는 것이다. (나는 신앙이 없어 그렇겠지만) 태양신을 믿었던 옛날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상해 본다. 캄캄한 북극의 겨울, 전기가 없던 시절, 얼마나 춥고 어두웠을까. 그들은 봄이 와 찬란한 해가 솟아오르고, 얼어붙은 대지를 녹여주기를 고대했을 것이다. 덜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해 본다. 몇 주일간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비가 내린다. 해님은 어디 계시나, 왜 우리를 버리셨을까, 얼른 나타나서 불쌍한 저희를 구해 주시옵소서. 해를 향해 절하는 것은 절박한 생존의 호소였다.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지 고대 태양신을 숭배한 자취를 찾을 수 있고 이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간구였다.     이 세상 만물은 모두 해를 따라 움직인다. 심리적으로도 해는 중심이다.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당신은 나의 태양”이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민요 ‘O Sole  Mio’는 해를 간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하는 노래일 것이다. 이 세상 오 대륙, 육 대양어디를 가든지 태양을 찬양하는 민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이 죽기 전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이제 늙어 기력이 없다. 일과는 해를 따라 움직인다. 동이 트면 일어나고, 해를 즐기며 한나절을 보내고, 해가 져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든다. 몇 년 전 늦가을, 집에서 가까운 트레일을 걷고 있었다. 길옆에 해바라기가 멀어져가는 해를 붙잡고 있었다. 새까맣게 남은 씨, 잎사귀는 시들어 가고 꽃은 생기기 없어 보였다. 산책을 끝내고 바닷가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인들이 바람을 피해 의자에 앉아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따끈따끈한차 안에 앉아 책을 읽거나 졸고 있었다. 이들도 해바라기였다.   지난겨울은 혹독했다. 폭설은 내리지 않았지만 몹시 추웠다. 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4월이 되어도 진정한 봄은 오지 않고 있다. 찬란한 해가 나오는 날보다 검은 구름이 걷히지 않고 강풍이 부는 날이 더 많다. 동남부 지역에는 허리케인에 홍수로 수많은 사람이 절망 속에 헤매고 있다. 세상도 시끄럽다. 전쟁은 끝나지 않고 때아닌 관세 전쟁으로 일상생활은 크게 위협받고 있다. 먹구름이 빨리 걷혔으면 좋겠다. 밝고 따뜻한 해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기를 바란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고대 태양신 태양신 해신 몬태나 국립빙하공원

2025-04-14

[삶의 뜨락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고

최근 몇 달간은 작가 한강에 푹 빠져 지냈다.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어 작가 스스로 대표작이라 일컫는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나는 2014년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부를 읽다가 책 내용이 너무 무겁고 잔인해서 덮어 두었었다.     한강의 작품은 치열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 애틋한 사랑이 있다. 이 책은 1970년대에 한국을 떠나온 세대에게는 조국의 근현대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아픈 역사 공부가 된다. 지금은 초고속으로 성장한 한국이, 조국을 떠나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든든하고 자랑스럽지만, 지금이 있기까지 대한민국은 많은 아픔과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이 소설은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1980년 1월에 서울로 이사 오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2014년에 완성된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많은 기록과 자료, 신문에 실린 사진, 검열에서 지워진 빈 문장들을 마주하게 되고 인터뷰하는 중에도 많은 도전을 받게 된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다른 화자의 관점에서 경험한 사건을 적는다.     제1장에서는 중학교 3학년인 동호가 친구 정대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중 정대가 총에 맞고 쓰러지자 도망친다.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동호는 정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시신 수습을 돕다가 결국 거기서 죽음을 맞게 된다.     제2장은 죽은 정대가 자기 몸을 떠나지 못하고 혼이 되어 부패해 가는 자기 몸을 보게 되고 얼마 후 군인들이 자신을 포함한 시체들을 쌓아놓고 불태운다. 자기 몸 주위를 떠돌던 정대의 혼은 자신의 시체가 타버리자 비로소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간다.     제3장은 겨우 살아남은 은숙이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불온한 희곡작가를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7대의 따귀를 얻어맞는다. 은숙은 민주화 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신을 원망하며 따귀를 맞아 실핏줄이 터지는 고통보다 훨씬 큰 죄책감에 더욱 시달린다.     제4장에서 김진수는 총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당한 후 출소했으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결국 자살한다.     제5장에서 선주는 경찰에 연루되어 그녀가 당한 고문에 대해 어느 작가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30cm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고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 그 후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병원에 데려가 수혈을 받게 했다. 2년 동안 하혈은 계속되었고 타인 기피증, 특히 남자 기피증으로 자기 몸을 증오하고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도피했다는 사실을 차마 증언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신체적 정신적 폐인이 된다.     제6장에서 동호 어머니는 동호가 죽기 전 동호를 데리러 도청에 갔지만 끝내 만나지 못하고 아들을 그리워하며 죄책감에 하루하루 겨우 연명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모두 6명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겪은 잔인무도한 고문과 참혹한 현장을 서술하고 양심을 짓누르는 죄책감으로부터 폐인이 되어가는 아픈 과정을 그렸다. 이토록 끔찍하고 잔인무도한 비인간적인 폭력이 학살자 전두환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의 명령을 따르는 군인이나 경찰도 결국 광주 시민의 아들이고 오빠라는 사실을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작가는 제한된 지면에 함축된 그녀만의 독특한 시적 감각으로 날카롭지만 포근하게 독자를 울린다. 벌써 40년이 훌쩍 지났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조국의 민주주의는 그들의 피 흘린 대가로 얻은 귀한 것이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나도 그들의 피가 헛되지 않게 다시 한번 역사의 장을 돌이켜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음에 감사드린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소년 광주 민주화 민주화 운동 동호 어머니

2025-04-07

[삶의 뜨락에서] 삶은 달걀 껍데기를 벗기다

어제저녁 맷돌에서 3시간 꾸었다는 달걀 2개를 지인으로부터 받았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달걀 2개를 재봉틀 옆 공간에 놓고 앉아서 물 한 잔을 마셨다. 그 귀한 달걀을 챙겨주는 친구의 배려다.     달걀 속이 보통 달걀과 다르다. 하얀색이 아니고 누런색이다. 씹는 맛도 물컹하지 않고 존득존득하다. 달걀을 보면서 기다림으로 채운 수고와 정성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배를 채우고 허기진 마음도 따뜻하게 한다.     달걀을 삶는 일은 기다림으로 시작된다. 삶은 달걀의 껍데기가 잘 벗겨지려면 냉장고에서 꺼낸 후 잠시 상온에 두어야 한다. 달걀 표면에 이슬이 송송 맺힐 즈음 끓는 물에 조심스럽게 집어넣고 7분쯤 끓이다가 찬물에 잠시 식힌 후 꺼내면 삶은 달걀이 완성된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쉽게 자라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방황하는 시기가 있다. 사춘기도 있고 힘들어할 때는 기다려야 한다. 인생이 쉽게 자라겠는가. 푹 삶는 기간도 있고 힘들게 지나야 하는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함께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어야 함을 알게 된다.   톡톡 책상에 달걀을 두드린 후 껍데기를 벗기는데 오늘따라 잘 떨어지지 않는다. 출출한 배는 얼른 먹을 것을 달라며 보채건만 서두를수록 껍질은 조각이 난다. 껍질과 함께 흰 살점이 떨어진다. 달걀은 점점 곰보가 되어간다.     똑같은 조건으로 삶아도 하나씩은 있다. 달걀 모양을 지키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껍데기를 조각조각 벗긴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조각난 달걀 껍데기를 하나씩 천천히 벗기는 동안 사람들과의 관계가 떠오른다. 껍데기가 잘 떨어지는 달걀처럼 손발이 척척 맞거나 생각이 통하는 이들은 만남부터 즐겁다. 만남이 기다려지고 헤어질 때도 아쉬움이 남는다. 함께 만들어 내는 결과물도 만족할 만하다. 하지만 토를 다는 이들은 만나기 전부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관계를 내팽개치지는 못하기에 힘을 빼고 느릿느릿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수고와 정성이 필요하다. 부족한 부분을 안아가야 할 때도 있고 손해를 봐야 할 때도 있다. 단순한 공감을 넘어 진지한 소통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달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주식이고 값도 싸고 영양은 풍부하고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었던 달걀이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값이 천정부지다.     지난 주말 채소가게에 갔었는데 어느 중년 부인이 2팩 달걀을 카트에 넣었다가 1팩을 다시 내놓는 광경을 보았다. 오랫동안 양계장을 운영하는 남미 사람이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닭장 청소를 하는 사람에게 닭똥을 모아 달라고 부탁을 한다. 친절하게도 버리지 않고 쓰레기 비닐 백에 넣어 야무지게 묶어서 준다. 닭똥은 운반하기가 무겁고 냄새가 심하지만 채소밭에 뿌리면 깻잎이 손바닥보다 넓고 색깔이 진녹색으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닭을 그 자리에서 잡아 주기도 하고 달걀을 판매한다. 아침에 내놓으면 오후에는 없다. 주위 사람들이 바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닮은 하루를 살아내기가 생각처럼 녹록지 않다. 인내심으로 천천히 달걀의 껍데기를 벗기듯 촘촘한 하루를 살아내야만 한다. 때론 기다림을 배우고 때론 수고스러움을 익힌다. 어쩌면 내 손에 쥐어지는 것보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 버리는 것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허기진 영혼을 채워 주는 삶은 달걀이 된다면 마음이 행복해진다. 호주머니의 두둑함보다 마음의 풍요로움이 행복지수가 높다. 행복은 소박하고 가까이에 있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껍데기 달걀 달걀 껍데기 보통 달걀 달걀 표면

2025-03-31

[삶의 뜨락에서] 태어나서 가난한 건

“태어나서 가난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도 가난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     이것은 빌 게이츠가 몇 년 전에 했던 말이다. 내 마음에 들어서 그때 내 노트에 적어놓았다. 오늘 우연히 다시 읽어보았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 가난하게 사는 것이야,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왜 가난한 집에 태어났어야 했을까?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게 ‘재수 없게’ 태어났단 말인가? 반대로, 부잣집에 태어난 사람들은 ‘운 좋게’ 부잣집에서 태어났단 말인가?   불교는 보는 관점이 다르다. 이 세상은, 모든 게 다 인과응보에 의해서 운행되고 있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다 ‘내 탓’인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도 다 자기 탓이다. 부잣집에 태어난 것도 다 자기 탓이다.   부처는 말씀하셨다. “남의 물건을 훔치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만약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항상 가난하여 배를 채울 밥이 없고 몸을 가릴 옷이 없을 것이다.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증일아함경 제44권)   여기서 부처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했었을 것이다.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면, 당장 부자로 살 것 같아도, 길에 보면, 어느 땐가는 경찰에 잡힌다. 영창에 들어간다. 사람들은, “저놈은 도둑놈이야” 하고 신용을 안 해준다. 그러니 후생이, 여기서 말하는 후생은, 내일도 모래도 후생이다. 물론 죽은 후 다시 태어나는 생도 후생이다. 후생이 점점 가난해질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마피아 두목은 남의 재물을 많이 훔쳤지만, 운 좋게도 경찰을 피할 수 있었다. 늙어서 집에서 편안하게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처의 말씀대로 인과법칙에 따라서, 다음 생에 태어날 때는 가난한 집에 태어날 것이다.     어떤 독재자들을 국민을 억압하고, 국민의 재물을 도둑질하면서 호강하게 살고 있다. 이런 독재자들은, 인과법칙에 의해서, 후생 어느 땐가는 재물을 다 잃고 가난하게 살 운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들은 전생에 다 도둑질을 많이 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나는 도를 깨친 사람이 아니기에, 부처처럼 전생이나 후생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다. 그래서 이렇다저렇다 하고 말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생에 게을렀다거나 허랑방탕했다거나, 하여튼 전생에 가난했었기에, 인과응보로서, 이 세상에 가난한 집에 태어났을 수도 있다.   부처는, 아무리 나쁜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일하면 다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타고나 운명은, 자기의 행실에 의해 항상 바뀌고 있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죽을 때도 가난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죽을 때도 가난하게 죽었다면 그것은 분명 당신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는데도 가난하게 죽었다면? 부처는 다음 생에 태어날 때는 부잣집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부자로 혹은 가난하게 사는 것은, 다 자기 탓이다. 그러니 남을 원망하지 말라. 지금 가난해도, 성실하게 살다 보면, 후생에는 부자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생에 부자로 태어나고 싶으시면 지금은 고생하더라도, “착실하게”, 그래 착실하게 살면 된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가난 당장 부자 마피아 두목

2025-03-26

[삶의 뜨락에서] 몸 몸 몸

지난 2월 한 달 동안 내가 맡은 환자가 4명이나 죽어 나갔다. 유난히도 추웠던 2월이었고 출근길은 날마다 전쟁이었다. 눈이 쌓였거나 얼음 빙판이거나 시베리아 바람이 볼을 후벼대는 검푸른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전사 같았다. 그 중 딱 한 번 온화한 날이 있어 오히려 안도와 불안에 떨면서 출근한 적도 있었다. 언젠가 ‘2월은 회색이다’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그때도 지금도 2월은 회색의 기억이 있다.       중환자실에서만 33년째 근무를 해오고 있어 아마도 나만큼 죽어가는 환자를 많이 경험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장의사도 이미 죽어 경직된 시신을 다룰 뿐 나처럼 죽어가고 있는 환자의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의 표정, 신체의 각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시시각각 살피며 지켜보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일단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면 진통제, 가래 줄이는 약과 진정제를 투여해서 환자를 편안한 상태로 유도한다. 환자가 편안해 보이면 지켜보는 가족도 편안해진다. 환자가 죽어갈 때 그들의 모습과 표정에도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이제 다 놓고 받아들이는 듯 잔잔한 미소를 띠고, 어떤 이는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 억울한 듯 인상을 찌푸린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나면 그때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진다. 더 이상의 움직임이나 변화는 없다. 의사는 사망선고를 한다. 보통 2~3시간의 grieving time(슬퍼할 시간)을 준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장의사에게 연락하라고 알려주고 시신은 비닐백에 넣어 냉동 시체 보관실로 옮긴다. 이제 거주할 육신을 잃은 혼은 어디로 가나? 이때 개인의 종교나 믿음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기독교에서는 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간다고 믿고, 불교에서는 업보에 따른 윤회설을 믿는다. 평소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 세계로 갈 것으로 추측한다. 이는 증명된 사실이 아니고 증명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믿음으로써 내 마음에 평화가 오기 때문이다. 조상숭배도 하나의 신앙으로 중국의 유교, 일본의 신도, 한국의 선교, 인도의 힌두교는 죽어서 영혼이 조상의 세계로 찾아간다고 믿는다.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장석주, 이 책은 내가 앞으로 읽고 싶은 책이다. 나는 이 문장을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경험과 읽은 책이 나의 우주다’라고 수정하고 싶다. 살면서 우리 내면에 축적된 경험의 깊이, 그 밑에 흐르는 무의식의 거울이 우리 몸을 통해 빛을 낸다. 한때 사후세계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된 많은 서적을 구매해 읽었다. 그 결과 ‘잘 죽는 법’이라는 졸저를 출간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사람을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적으로 분류해 차별해 왔었다. 다시 말하면 몸을 쓰는 사람과 머리를 쓰는 사람으로 분류해서 대인관계를 맺고 지내왔었다.     나는 이제 겨우 철이 들어가는 것일까. 살아갈 날이 살아온 시간보다 짧아질수록 삶 자체가 실존임을 실감한다. 삶을 체험하는 몸 자체가 실존이다. 탄생해서 죽을 때까지 육신을 입고 겪는 일만이 삶이고 실존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깊게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철학자 중에서 니체의 ‘몸은 형태의 형태이자 영혼의 형태이다.’ 이 묘사는 과연 혁명적인 선언이다. ‘영혼, 정신, 몸 중에서 몸이 가장 앞선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정신을 제 도구로 쓴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반란인가. 평생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믿고 살아온 나에게 니체의 이 사상은 큰 충격이었다. 평생 수천수만 명의 죽음을 목격해 온 나는 이제 몸, 몸만을 믿게 되었다. 사람은 평생의 경험이 몸을 통해 표출된다. 몸은 나의 존재를 표현하는 현상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총에 맞아 죽은 정대의 혼이 주위를 맴돌다가 화장당한 후 소멸하였다고 묘사한다. 우리는 죽은 자의 혼이 어디로 가는지 증명할 수 없고 추측만 할 뿐이다. 기도와 장례식은 죽은 자에 대한 가족과 친구들의 마지막 예우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런 의식을 치름으로써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는 평안을 얻지만 죽은 자는 고요하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영혼 정신 신앙 세계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적

2025-03-24

[삶의 뜨락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가 작가 한강에게 당신의 첫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물었을 때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추천했다. 이 책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고백하건대  4·19 혁명, 5·16 군사 정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내가 태어난 후 일어난 사건들로 많이 보고 듣고 배워왔지만, 제주 4·3 사건은 왠지 멀고 아득한 역사 사건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다. 실제로 이 사건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3만 명의 주민이 무자비하게 희생당한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물론 이 사건이 궁금해서 구글에 검색해 보면 순식간에 필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문학에는 혼이 있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다. 다시 한번 문학의 위대함을 피부로 느끼고 작가의 섬세함과 예리한 필력에 고개 숙이게 된다. 너무나도 잔인하고 참혹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한강은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처럼 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그 시기는 우리나라가 해방된 기쁨에 들떠있었지만 당장 정치나 이념보다 먹고 살아갈 방법만이 최대의 관심사이었던 때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최고에 달했고 정부 수립의 혼란을 틈타 러시아는 마르크시즘, 스탈린주의로 우리나라를 통째로 공산국가로 만들 셈이었다. 힘없는 우리 민족은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폭력과 공포만이 가득한 상황에서도 그들이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사랑이었다. 가족을 찾아야 한다는 그리고 보호해야 한다는 뜨거운 가슴이 없었다면 그들은 무너지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녀는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그녀는 작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화자인 경하가 꾸었던 꿈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눈 내리는 벌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마치 묘비처럼 등성이까지 심겨있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생각하며 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운동화에 물이 밟혀 돌아보니 지평선인 줄 알았던 곳이 바다였다. 봉분 아래 뼈들이 쓸려가 버리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어 당황하면서 꿈에서 깬다. 경하는 이 꿈 이야기를 사진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연출가이며 예전에 자신이 잡지사 근무 시절부터 동갑내기 친구였던 인선에게 말하자 인선은 그것을 프로젝트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약속한다. 어느 날 경하는 인선이 제주도에서 목공예 작업 중 손가락 절단 사고를 겪고 이를 접합하는 수술을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에 와 있는데 방문해 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는다. 병원에서 인선은 경하에게 제주도에 있는 자기 집에 가서 자신이 애완용으로 키우고 있는 앵무새를 돌봐달라고 간곡하게 다시 부탁한다. 예전에 한번 가본 기억을 더듬어 그날로 경하는 인선의 집으로 가지만 폭설로 인해 심한 어려움을 겪는다. 막상 도착하니 앵무새는 이미 죽어있고 거기서 경하는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였던 인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가족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인선은 그동안 4·3 사건 피해자들의 인터뷰 내용과 사진, 사건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프로젝트를 위해 나무 목공예 작업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마침내 온 가족을 잃게 된 인선 어머니와 인선은 어느 날 강둑에 앉아 있는데 엄마가 인선의 뺨을, 뒷머리를, 어깨를, 등을 쓰다듬는다.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한강은 이 책을 ‘지극한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 인선은 어머니의 삶이 자신에게 스며오는 것이 고통스러우면서도 그 사랑을 외면하지 못하고, 경하 또한 인선의 마음이 힘겨우면서도 내치지 못하는 그 사랑, 그 사랑에 밀려 기어이 고통을 택하는 것이 오직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한강은 한국이 낳은 앙가주망의 대표 작가다. 메마르고 재미없는 역사 이야기도 그녀를 통하면 가슴 시리고 섬세한 이미지와 시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문체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작별 인선 어머니 가족 이야기 화자인 경하

2025-03-10

[삶의 뜨락에서] 신세를 졌어요

오래전 베를린 마라톤에 참가했던 친구들을 플러싱에서 만나기로 했다. 뉴저지에서 버스를 타고 한양 슈퍼마켓 앞에서 내리면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반가웠다. 암 투병으로 아팠던 친구는 건강해 보였고 멋쟁이 친구는 여전히 젊음이 넘쳐흘렀고 열심히 일하는 친구는 오늘따라 여유가 있어 보였다. 플러싱 먹자골목을 다니면서 구경도 했다. 음식점에 앉았는데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로봇이 왔다 갔다 하면서 운반해준다. 로봇이 직원들의 손을 대신했다. 음식도 맛있고 양도 많았다. 뉴저지 식당에서 느끼지 못했던 콩나물도 아삭아삭하고 양념도 느끼하지 않고 생선도 많이 들어있고 생선 자체 맛이 일품이었다. 4명이 먹고 많이 남았다. 내가 가지고 가기로 하고 식대를 계산하려고 하니 벌써 다른 친구가 내 버렸다. 커피숍에 갔는데 한 친구가 계산대 앞에 서 있으면서 맛있는 빵을 골라오라고 손짓한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하다가 한 친구가 일터로 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셋은 발 마사지하는 곳으로 향했다. 1시간 발 마사지를 해주는데 어머 좋은 것. 장딴지부터 발가락 하나하나 문지르는데 피로가 확 풀리고 발이 보드랍다. 꺼칠꺼칠했던 발바닥이 어린아이 살결처럼 부드러워졌다. 움츠리고 일어나 기분 좋게 계산대로 다가갔는데 다른 친구가 벌써 계산을 해버렸다. 온종일 즐기면서 한 푼도 내지 않아서 먹먹했다.   신세 지기 싫다. 빚지고 사는 일은 불편하다. 받았으면 돌려줘야 한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잘 받는 게 어려웠다. 겉으로 티 내지 않아도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다. 나는 언제나 갚아야 할 일들이 남아있는 사람처럼 살았다. 그래서 무엇이든 공짜로 받으면 불편했다. 공짜여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격표가 붙어있는 것 같다고 할까. 갚아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작은 호의가 호의로 다가오지 않는다. 친구 눈에는 그 모습이 보였던 것 같다. 티가 났느냐고 물어봤더니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하루 이틀 볼 것도 아니고 이번에 못 내면 다음에 내면 되지 뭐.   지금의 세상은 호의 대신 편의를 요구한다. 의도나 숨겨진 목적 없는 호의 대신 목적이 선명한 편의를 제공하게끔 변해가고 있다. 세상살이가 각박할수록 더 그럴 것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호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불분명한 목적은 마음을 의심하게 한다. 그렇지만 호의를 받아들이기 위해 여유를 가지라는 조언은 가당치 않다. 그게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여유를 가지기란 어렵지만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은 바꿔볼 수 있다. 받았다는 사실보다 친절한 마음씨에서 시작되었다는 의도를 기억해 보는 건 가능하다. 중요한 건 친절에서 비롯한 마음이다.   나는 그래서 마음의 출발지만 기억하기로 했다. 일생은 길고 유별나게 굴 필요는 없다. 딱 맞게 떨어지는 관계는 없다. 더 줄 때도 있고 덜 받을 때도 있는 법이다. 주고받는 과정에 익숙해지면 그냥 그 자체로 좋지 않을까. 돌려줄 마음이 빈한해 옹색한 모양새가 부끄러울지라도 가까이 받아들이기를 선택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는 갚는 일이 싫어서 받아들이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오고감에 익숙해져야 한다. 무뎌져 익숙할수록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시간은 관계에서 의미 있던 순간들도 희미하게 만드니까. 다음에 친구들을 만나면 꼭 밥을 사야겠다. 헤어지면서 작년에 아카시아 꽃을 넣어 만든 와인을 한 병씩 주면서 무슨 향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넌지시 숙제를 주었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신세 멋쟁이 친구 호의가 호의로 신세 지기

2025-03-05

[삶의 뜨락에서] 노인의 시 공부

은퇴한 후, 치매 예방에 좋을 것 같아서,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늙었기에, 내 두뇌 또한 늙었다. 두뇌가 늙었는데 시를 쓸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해보았다. 이때 바로 일본의 시바타 도요라는 할머니의 시가 유행되었다. 시바타는 9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100세에 시집을 발간했다. 그 시집이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팔렸다. 한국에도 그녀 시집이 번역되어 많이 읽혔다. 시바타를 보고서, 두뇌가 늙었어도 시를 쓰는 데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테의 수기’에서 독일 시인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젊어서 시를 쓴다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 시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이 아닌 것이다. (감정이라면 젊었을 때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시는 경험인 것이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도시와 온갖 사람들, 그리고 여러 가지 사물을 알아야만 한다…. 추억이 많아지면 추억 또한 잊혀야 한다. 그 추억이 우리의 피가 되고, 눈이 되고, 몸짓이 되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마침내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됨으로써, 아주 우연한 순간에 한 편의 시의 말이 솟아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늙어오는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시를 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동네 미국 도서관에 가 보았다. 한국소설이나 수필 책은 수두룩하게 많아도, 시집은 단 한권도 없었다. 그래도 이리저리 시집을 구해서 많이 읽었다.   막상 시를 쓰려고 하니까 전연 써지지 않는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경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첫째 시를 쓰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있어야 한다. 그에 따른 사색(思索)이 있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안 된다. 시를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소수의 천재는 배움 없이 시를 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시 쓰는 방법을 꼭 배워야 한다. 배우기 위해서, 시 선생을 찾았다. 뉴욕에는 시를 가르치는 학교나 학원이 하나도 없었다.     2017년, 내 나이 80. ‘중앙일보 문학 동아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전화해서 참여했다. 김정기 선생님을 만났다. 시 작법을 배웠다. 많은 시간을 시 공부에 열중했다. 시라는 게 배운다고 해서 쉽게 써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또 알았다. 운동선수들이 매일 고된 연습을 하는 식으로, 시 또한 매일 써보고 또 써보면서, 고치고 또 고쳐가면서 실력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인 나태주는 “산문은 작정하고 쓸 수 있지만, 시는 작정하고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시는 내가 쓰는 게 아니고, 시 자체가 쓰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시상(詩想)은 뜬금없이 저절로 떠오른다. 떠오른 시상은 금방 없어진다. 없어지기 전에 얼른 종이에 적어놓아야 한다. 한번 사라지면 다시 기억해내기 어렵다. 종이에 적어놓은 시상을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고 또 수정한 후에 한 편의 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써놓은 시를 아내한테 읽어보라고 한다. 아내가 좋아할 때까지 혹은 내가 만족할 때까지 시를 고치고 수정한다. 시를 쓰다 보면 짜증도 나고 골치도 아프다.     그런데 다 써놓은 후 완성된 시를 읽어볼 때의 기분은, 마치 높은 산 정상에 도달했었을 때의 만족감이다. 조성내 / 시인·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노인 공부 그녀 시집 시인 나태주 김정기 선생님

2025-02-20

[삶의 뜨락에서] 여보, 내 시를 읽어줘!

“여보, 내 시를 읽어줘”하고 부탁한다. 내 시가 좋다고 생각되니까, 아내한테 읽어보라고 한 것이다. 대개의 경우 아내는 ‘오케이’ 하고서 내 시를 읽는다. 그런데 아내의 기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내도 바쁘다. 아내도 해야 할 일이 많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있다. 이럴 때는 아내도 크게 반발한다. “여보, 나는 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게다가 나는 시에 대해 전연 흥미도 없어. 당신이 시를 좋아하면 당신 혼자 시를 써. 왜 나를 못살게 굴어! 못살게 굴지 마.” 그리고는 내 시를 안 읽겠다고 거절한다.     아내를 달랜다. “여보, 당신이 나에게 부탁하면, 나는 얼른 당신의 부탁을 다 들어주었어. 그런데 당신은 내 부탁도 안 들어준다는 거야. 무정한데!” 그러고는, 아내 곁에 내 시를 놔두고 나는 아내 곁을 떠난다.     다행히도 아내의 짜증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내는 내 시를 읽는다. “내 시가 안 좋다”고 평한다. 나는 아내가 내 시를 읽고서, “아, 이 시, 아주 좋은데”하고 평해주기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내 시가 나쁘다고 말한다. 내 속이 확 상한다. “어디가 나쁘단 말이야? 지적해줘” 하고 화낸다. 아내의 지적을 듣고 있으면, 내가 화가 나 있어도, 그래도 아내의 지적이 옳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아내의 지적이 맞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해준다. 고맙다는 나의 말을 듣고서 아내도 기분 좋아한다.     시를 써놓은 후, 나 혼자서 내 시를 읽어본다. 어떻게 보면 내 시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내 시가 나쁘게 보인다. 문제는, 내가 내 시를 읽어보고, 내 시가 ‘좋다’ ‘나쁘다’ 하고 스스로 평가할 만큼 내가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력이 부족하니까, 나는 아내의 평에 의존해야만 한다. 다행히도, 세월이 흐를수록 시에 대한 안목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앞으로도 아내의 지적을 나는 계속 받을 것이다.   나는 ‘중앙일보 문학동아리’ 회원이다. 가끔 시(詩) 모임이 있다. 모일 때마다 회원들은 시 한 편씩 써서 가져온다. 돌아가면서 각자 자기 시를 낭독한다. 낭독한 후, 어떤 동기로 시를 쓰게 되었다는 등, 어떤 메시지를 독자에게 주고 싶다는 등, 각자 자기 시에 관해 설명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시를 읽고 난 후, 다들 “그 시 참 좋네요.” 하는 평을 듣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좋다는 평을 듣지 못하면 섭섭해한다. ‘좋지 않은 점’을 지적해주면, 자기를 ‘욕하고 있다’고 오해해서 화를 내기도 한다. 심지어 싸우려고 달려들기도 한다. 그러니, 회원들은, 남의 시의 나쁜 점을 지적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말로만 ‘좋네요’하고 간단하게 평해버리고 만다.     그러니, ‘좋다’는 말만 들으니, 다들 좋아한다. 좋아하는 거야 좋다. 그런데 빈말로, 좋다고 하는 평을 듣고서, 진짜로 자기 시가 좋아서 좋다고 한 걸로 오해해버릴 수가 있다. 그러면 자기도취에 빠진다. 자기도취에 빠지면, 어떻게 발전을 이룩해갈 수가 있단 말인가? 자기 시의 나쁜 점을 가끔은 비평받아야만 시(詩)가 발전해갈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모임부터는, “나는 결코 화내지 않을 테니까, 내 시의 나쁜 점을 허심탄회하게 비평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해야겠다. 조성내 / 시인·의사삶의 뜨락에서 자기 시가 중앙일보 문학동아리 다음 모임

2025-02-11

[삶의 뜨락에서] ‘희랍어 시간’을 읽고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오래전에 사서 읽다가 재미가 없어 중간에 덮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꾸준히 책을 읽어온 덕택에 이번에 읽은 이 책은 한강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번에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독후감을 ‘조용한 천재’라고 명명한 후 이 자리에 글을 올렸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과연 한강은 한국이 낳은 천재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지금까지 세계적 명작이면서 고전으로 알려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톨스토이의 ‘부활’ ‘안나 카레니나’를 보아도 작품 대부분은 장편이다. 명작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묘사, 성격묘사, 그리고 주위 배경 묘사가 얼마나 섬세하고 구체적인지 마치 독자는 자신이 그 이야기 속의 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반면 다루는 사건의 기간은 놀랍게도 매우 짧다. 그만큼 문장을 늘려서 생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의 문장력과 역량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     한편 한국 작품은 뼈대는 건장한데 영양 상태가 빈약하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전후의 배경과 묘사와 표현 방식은 작가의 실력에 달려있다. 우리는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 문학사에 숨어있는 천재를 발견한 것이다. 한강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묘사를 시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함축하여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놓는다. 한강의 언어에 대한 호기심, 관심 그리고 사랑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우리처럼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운 모국어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부류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네 살 때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아직 자음, 모음에 대한 인식 없이 모든 글자를 통 문자로 외웠다니 과히 놀랄만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고 후에 그 단어들은 스스로 꿈틀거리며 낯선 문장을 만들었다.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 수시로 잠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명치를 눌렀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이 소름 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17살이 되던 겨울,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그녀를 에워싸고 그녀는 말을 잃게 된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눈이 멀어져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녀 모두 각자 깊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삶을 견뎌내던 중 희랍어 강사인 남자와 수강생으로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어느 날 희랍어 교실로 향하던 중에 빌딩 지하실에서 사고로 생명줄과도 같은 안경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말을 잃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그를 그의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면서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만 했다. 그 둘은 남자의 작은 방에서 서로 소통하며 공감하며 치유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이토록 우아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완전 감동이다. 언어에 그토록 예민한 작가는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에 자신의 혀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말 외에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침묵 속에서 상상 속에서 인간의 혼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 보완해 가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 세상은 이제야 그녀를 알아본다. 이제 그녀는 활짝 꽃피울 일만 남았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 희랍어 교실 국어 시간

2025-02-10

[삶의 뜨락에서] 특별한 음식 맛을 내는 사람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대여섯 친구들 모임이다. 그중에 한 친구가 죽기 전에 딱 한 끼만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을 먹고 싶으냐고 묻는다. 말하자면 소울 푸드인 거지. 너도나도 한 가지 음식을 꺼내기 시작하자 나는 한 발짝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우리가 말한 소울 푸드의 스토리 대부분은 그 안에 엄마나 할머니가 등장했다. 우리 엄마가 가장 잘하는 메뉴가 돼지 두루치기야. 내가 언제 한 번 엄마한테 이거 단일 메뉴로만 식당을 차려도 동네 식당을 다 제압할 수 있다고 말한 적 있다니까. 나는 우리 할머니가 어릴 때 직접 끓여주신 단팥죽 맛을 못 잊어. 할머니랑 같이 살았거든. 내가 학교 갔다가 오면 할머니가 갈치조림도 해 주고 수제비도 해 주고 진짜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해 주셨는데 나는 그중에 단팥죽이 그렇게 맛있는 거야. 다른 집 애들은 동지나 어떤 특별한 날에만 먹잖아. 나는 허구한 날 단팥죽 타령을 했던 거지. 우리 집은 그냥 가족이 다 잡채를 좋아해. 그래서 우리 동생이랑 나는 중학교 때 엄마 아빠 두 분 다 어디 가셔서 안 계시고 우리 둘만 밥을 먹어야 했는데 둘이서 잡채를 해 먹었어. 맨날 엄마가 하는 걸 봤으니까 어린 나이라도 그 메뉴는 너무 능숙한 거야. 잡채가 왜 맛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우리 집은 당면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는 것 같아.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우리 집은 당면에 간장만 부어도 좋아할걸. 죽기 전에도 아마 잡채를 먹고 있을 거야.     왠지 실제로도 그럴 만큼 그 정도로 좋아한다는 표현이라 너무 와 닿았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된 느낌이었다. 나는 된장에 고춧잎을 넣어 삭힌 고추와 고춧잎이 제일 먹고 싶다고 말했다. 50년 전 한국 식품점도 없었는데 딸을 임신하고 입덧을 심하게 하면서 그 고춧잎이 먹고 싶어 누워 있으면 천정에 고춧잎과 고추가 그림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뉴욕마라톤에서 만난 지인이 김치를 김치 통에 가득 담아 주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받아먹기가 조금 망설였다. 마켓에서 사 먹는 김치와는 전혀 다른 맛과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배추가 아삭거리고 배추 잎 사이사이에 들어간 양념이 달랐다. 파, 마늘, 무, 갓이 대충 보기에는 마켓 김치와 다르지 않았는데 씹히는 감촉이 달랐다. 살짝 물어보았다. 어떻게 담았기에 특별한 맛이 배어 있느냐고. 무엇하나 빠지지 않고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손으로 다듬고 어루만지면서 골고루 양념을 섞는다고 쉽게 말한다. 설탕 대신 배와 홍시를 갈아 넣고 무, 파, 마늘, 갓은 직접 채소밭에 씨를 뿌려 가꾼 유기농 농산물이었다. 한 포기를 아껴 두었다 식구들이 모이는 설날 가지고 갔다. 떡국과 같이 먹으면서 떡국보다 김치 맛이 독특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같은 양념에 똑같은 배추로 김치를 담그지만 맛이 다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음식을 잘하는 사람들은 양념과 배추의 조합을 특이한 감각으로 잘 맞추고 고춧가루도 보기 좋고 맛깔나게 배합을 잘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간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 소금으로 절이는 것도 시간과 배추 상태를 잘 파악하는 재치가 있다. 신경 쓰고 손맛까지 곁들이니 어찌 기이한 맛이 우러나오지 않겠나. 우리 친구 중에 농사를 기가 막히게 잘 지어 고추, 상추를 잘 얻어먹었다. 지금까지 농사와 음식 솜씨는 제일이라고 믿고 있었고 상추를 이모작을 해서 6월까지 밥상에 올라왔는데 이 지인은 상추를 3모작 하여 11월까지 상추를 먹는다고 했다. 3모작 상추 맛은 2모작과 맛이 조금 다를까.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음식 배추로 김치 음식 솜씨 고추 상추

2025-02-03

[삶의 뜨락에서] 여자들이 돌아온다

“여자들이 돌아온다. 멀리 영원으로부터” 돌아온 여자들이 외친다. “때 이른 여자들인 우리, 문화에 억압된 자들인 우리, 입마개로 차단된 아름다운 입들, 꽃가루, 숨결, 미궁, 사다리, 짓밟힌 공간인 우리, 도둑맞은 여자들인 우리- 프랑스 페미니즘 대표 사상가, 작가, 교수인 엘렌 식수(Helen Cixous, 1937~)는 산파인 어머니를 따라 출산하는 여성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고 고백한다. 그녀 자신이 임신해 출산한 경험은 ‘글쓰기’라는 생산 행위와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적 글쓰기’의 바탕에 아이를 품어 낳는 경험이 녹아난 것이다.     그녀는 1969년에 유럽 대학에서 최초로 ‘여성학’을 개설했다. 그녀는 여성의 창조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과 예술작품의 창작을 촉진하였고 여성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학문적이고 문학적인 논의를 끌어냈다. 많은 여성 정치인, 여성 경영인들이 있지만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여성 해방운동을 주도한 페미니스트다.     나도 태어나 보니 여자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 선택하고 그 선택은 사람을 만든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성별을 선택할 수도 없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할 때여서 한 가정에서 아들은 특별 대우를 받고 자랐다. 음식이 귀하던 시절, 아버지나 아들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어머니는 밥을 미리 퍼서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두었던 추억을 누구나 갖고 있다. 어머니와 딸들은 아들의 성공을 위해 희생과 협력으로 사회의 기성 질서를 지키는 수호신이 된다. 그들은 당신의 여성성을 주장할 엄두도 못 내고 가부장적 사회 질서에 감염되어 그 기성 질서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졌다.     이런 부당한 성차별은 나의 대학 시절 때 최고조에 달했다. 그 당시만 해도 여자가 대학에 가서 커리어우먼이 되기보다는 격에 맞는 남자를 만나기 위한 경우가 더 많았다. 당연히 여자들은 화장하고 옷을 잘 차려입고 다양한 머리 모양으로 한껏 멋을 내기 바빴다. 난 그런 상황이 너무 싫었다. 인간의 뇌세포가 가장 활발한 20대 초반에 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에 어떻게 시간 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를 한단 말인가. 자신을 잘 보이게 치장해서 쇼윈도에 진열해 놓고 주인을 기다리는 애완견 같았다.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는 나의 시그니쳐였다. 그리고 남몰래 미국에 와서 성전환 수술을 해야겠다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대학을 마치고 바로 미국에 왔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진화되었다. 여자는 집에서 해왔던 육아와 가사 일에서 많이 해방되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 생활은 편리하고 간편해졌다. 일찍 깨우친 여성 운동가들이 나왔고 남녀평등을 주장함으로써 여성 참정권도 얻었다. 이제는 자유경쟁 시대다. 이제는 성차별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시대다.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에도 여성의 지위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향상되었다. 우선 여성 대통령, 총리, 정치가, 대기업 총수 그리고 의사, 변호사는 과반수가 여성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아선호 사상은 고대부터 존재해 왔다. 수렵과 농업 시대에서는 신체적으로 강한 남성이 여성위에 군림해 왔다. 점차 문명이 발달하면서 종족 번식과 가계의 대를 잇는다는 이유로 남아선호사상은 늘 우세했다. 다행히 지금은 남녀평등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기회는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어졌다. 1970년대에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다. 그동안 나는 여자로 태어나 많은 불이익을 당해왔다고 믿었었다.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여자이기에 남자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 고맙게 생각한다. 이 경험을 십분 활용하여 “여성들이여 힘내라. 유리천장을 깨고 훨훨 날아라”라고 외치고 싶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여자 여성 해방운동 여성적 글쓰기 여성 참정권

2025-01-27

[삶의 뜨락에서] 준비해놓은 후 가는 게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34쪽)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에 써진 한 토막의 시(詩)다. 위의 구절이 힘차게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래 맞아,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났단 말이야. 그리고 아무런 훈련 없이 죽어갈 거란 말이야. 나는 여러 번 이 말을 중얼거렸었다.     일이년이 지난 후, 다시 이 시집을 읽고서, 또 이 구절에서 나는 다시 사색하기 시작했다.   실은, 우리는 태어난 것조차 모르고 태어났다. 자라면서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왜 태어나야 했었는지? 왜 살아야만 하는지도 모르면서,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는다. 밥을 먹으니까, 계속 살고 있다. 자발적으로 살고 있는지? 혹은 수동적으로 살아지고 있는지? 모르면서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35쪽)고 쉼보르스카는 말했다. “사라진다”는 게 아름답다니? 이 말이 사실일까?     살아있는 것이 만약 죽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살아있는 것들로 꽉 차버릴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로 꽉 차버린다면? 땅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악하고 잔인한 일만 남아 있다. 그것은 서로 죽이기다. 혹은 굶어 죽기다. 그래서 살아 있던 자가 죽어 사라짐을 보고, 쉼보르스카는 ‘아름답다’고 말했던 것 같다. 이런 잔인함을 피하고, 지구를 살리고, 후손을 위해서, 때가 되면 나도 너도 우리는 죽어주어야만 한다.   태어남과 죽음은 윤회한다는 게 불교이다. 이 세상에 한 번만 태어난 게 아니다.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수없이 태어난다. 쉼보르스카는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고 말했는데, 극히 소수지만, 후생(後生)을 위해서 “미리 준비를 해놓은 후” 죽는 사람들도 있다.     부처는 태어남은 고통이라고 했다. 태어나면 늙어야 하고, 병 들어야 하고,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도를 닦으라고 했다. 말이 쉽지, 도를 닦는다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생(生)에서 조금 닦고, 또 다음 생에서 또 조금 닦고, 그러면 어느 생에선가는 도를 깨치게 된다. 하지만, 도를 깨치지 전에는, 모든 생물은 죽으면 다시 태어나니까, 다시 태어날 바에야, 다음 생에서는 좋은 복을 많이 갖고 태어나면 좋지 않겠는가!     좋은 복을 갖고 태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살생·도둑질·간음·거짓말 등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부처는 말했다. 남에게 선한 일을 하라고 했다. 고등학생이 명문대에 가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가. 대학생이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싶으면 열심히 일하지 않는가. 가는 곳을 알고서 졸업하는 게 좋지 않은가. 계율을 지키고 선행(善行)을 많이 행한 사람들은, 죽음 후, 자기가 가기를 원한 곳에서 태어난다고 부처는 말했다(잡아함경). 재벌 집에서 태어나고 싶으면, 재벌 집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당신도 좋은 복을 듬뿍 갖고 좋은 곳에서 태어나기를 바랄 것이다. 어디로 가는가를 미리 준비해놓은 후,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좋은 곳에 가고 안 가고는, 당신한테 달렸네요! 조성내 / 수필가·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시인 비스와바쉼보르스카 노벨문학상 수상자

2025-01-20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